한국 언론 장악 꼭대기엔 윤석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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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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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28일 오전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직원들과 기자들이 모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이 소속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공동행동)이 주최한 이날 기자회견은 방심위원장이 다른 위원들의 발언 시간을 제한하고 회의를 중지할 수 있는 규칙 개정을 저지하기 위해 열렸다. 이들은 이번 규칙 개정이 ‘합의제 기구’라는 외피를 사실상 벗어던지는 꼴이라고 지적하며 ‘입틀막’ 규칙 개악을 철회하고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방심위는 류 위원장 취임 이후 윤석열 정부의 언론탄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구로 전락했다. 사실상 류 위원장이 구성했다고 볼 수 있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의 역할도 컸다. 방심위도, 선방위도 윤 정부 집권 이후 이어진 언론 장악과 탄압의 선봉에 서 있다.


압수수색·연쇄 날림… ‘복붙’ 장악

시작은 화기애애했다.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이 매일 열렸다. 처음 보는 풍경에 비판적인 언론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언론 장악 준비가 분주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상혁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을 국무회의 참석 명단에서 제외하며 사퇴를 압박했다. 감사원은 방통위 감사에 착수했다. 언론 장악의 신호탄이었다.

윤 정부가 본격적으로 비판적인 언론에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22년 9월 문화방송(MBC)의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발언 보도 이후부터다. 이후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결정이 나왔다. 출근길 도어스테핑도 중단했다. ‘윤석열 사단’이 주요 보직을 꿰찬 검찰에선 <뉴스타파>나 MBC 등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수사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을 명예훼손 혐의 피해자로 적시하고 기자들을 압수수색했다. 수사를 통한 압박이었다.

집권 이듬해인 2023년부턴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5월 한상혁 전 위원장의 면직 처분을 재가한 윤 대통령은 ‘언론 장악 기술자’ 이동관 전 홍보수석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방통위가 방송 장악에 중요한 이유는 한국방송(KBS)과 MBC 등 공영방송 이사회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관 위원장 취임 전후로 방통위와 공영방송 이사회에선 연쇄 날림 사건이 발생했다. KBS와 방문진 이사에 보수인사가 임명됐고 기존 이사장과 이사들은 해임했다. 일련의 날림 결과 2023년 11월 박민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KBS 사장으로 임명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4년 2월, 방통위는 보도전문채널 와이티엔(YTN)의 매각을 승인했다.수장이 바뀐 방송사는 금세 바뀌었다. 박 사장 취임 첫날 시사프로그램 <더 라이브> 편성이 삭제됐고, <주진우 라이브> 진행자인 주진우 전 기자가 하차했다. <뉴스9>을 진행해온 이소정 앵커 등도 교체됐다. 취임 다음날엔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공영방송으로서 공정성을 훼손했다며 사과했다. 유진그룹에 매각된 YTN도 ‘복붙’을 한 듯 KBS와 똑같은 과정이 진행됐다. 김백 사장은 2024년 4월 취임한 뒤 곧바로 “불공정 편파보도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취임 직전 선방위 제재를 여러 차례 받은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진행자가 교체되기도 했다.


특정 언론사 반복 제재

장악하지 못한 언론은 탄압 대상이 됐다. 대표적인 탄압 수단은 방심위와 선방위였다. 류희림 위원장은 방송사 추천권을 종합편성채널 티브이조선에, 시민단체 추천권은 보수 언론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에 줬다. 이전 선례를 보면 방심위는 방송사 몫으로 한국방송협회 등 대표성을 띠는 학회에 추천권을 줬다. 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티브이조선에 추천권을 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독단적으로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야권 추천 방심위 상임위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야권 추천 상임위원을 해촉한 뒤 새로 임명하지 않았고, 그사이 선방위 추천권을 가진 단체 선정 등 주요 의사결정은 모두 여권 상임위원 2명(류 위원장과 황성욱 위원)이 했다. 이렇게 구성된 선방위는 전방위적으로 제재에 나섰다. 특정 언론사에 반복된 제재는 제작자들의 위축과 자기검열을 낳았다.

일각에선 방송 심의 자체를 민간의 자율규제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공적 규제에서 빠지는 부분은 통합형 자율규제기구로 가고 언론사들이 자율적으로 규제해 품질을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에선 국가가 직접 심의하지 않는다. 대신 자율규제기구가 활성화돼 있다. 2023년 말 발표된 ‘해외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규제 현황 연구’에 참여한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영국이나 미국 등은 다 승인적 자율규제를 하고 있다”며 “한국과 동일한 제도를 도입한 나라는 전세계에 없다”고 말했다.

이 모든 장악과 탄압의 정점에 윤 대통령이 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미디어는 승자독식”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마음만 먹으면 언론을 장악하거나 탄압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실제 그간 보수든 진보든 누가 집권해도 조금씩 유리한 방식으로 제도를 이용해왔다. 김유진 방심위원은 “(대통령의 언론 장악은)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이뤄져왔다”며 “다만 이렇게 제도를 깡그리 무시하고 오직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방송을 제재하겠다는 목표로 파행적으로 운영한 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심 교수도 “이런 권한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게 윤석열 정부”라며 “어느 정부도 이렇게 하진 않았다. 최소한의 기준이 있었고 암묵적으로 합의한 선이 있었는데, 그걸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가장 극적으로 표출된 기구가 선방위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방위가 가장 심한 형태로 나타난 거예요. 사실상 심의를 자기들의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는 단계까지 온 거거든요.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을 공격하기 위한 공격 무기로 보는 거죠.”

선방위가 이번처럼 노골적인 언론탄압의 도구로 사용된 적은 없지만, 제도상의 문제를 인식하고 고치려던 노력은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방심위원을 맡았던 심영섭 교수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당시 심의 제도 개선을 위해 여러 개정안을 냈다고 했다. “논의 단계에서 기각됐어요. 외부 반대의견이 거셌습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집권한 입장에선) 굳이 개정할 이유가 없죠. 정말 좋은 도구거든요.”


여야 할 것 없이 집권 뒤 딴소리

제21대 국회에서 끝내 통과되지 못한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이 법은 공영방송 이사 수를 늘리고 추천권을 정당이 아닌 외부 단체에도 배분하자는 것이 골자다. 사실 문재인 정부 때도 공영방송 이사 비율을 바꾸는 취지의 법안이 발의돼 통과될 뻔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서 무산됐다.윤 정부 입장에선 개정되지 않은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방통위와 방심위 등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방통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정부·여당이 추천한 2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방심위는 6(정부·여당) 대 2(야당) 체제다. 또 2024년 8월이면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기가 끝나 교체가 예정돼 있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체제는)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죠. 야당이 추천한 (방통위) 위원을 아무런 설명 없이 임명하지 않고 있잖아요. 한편에서는 국회에서 여야가 추천해야 하는 3명도 비어 있는 상태로 완전히 파행 상태인 거죠.” 김동찬 위원장의 말이다.

공동행동은 5월28일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서 이런 문제들을 지적했다. 무차별 압수수색과 낙하산 사장으로 인한 제작 자율성 파탄, YTN 매각을 통한 방송장악의 외주화 등이다. 이들은 “언론탄압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상 추락으로 연결됐다”며 제22대 국회를 향해 방송3법을 최우선 과제로 재입법하고 윤석열 정권의 언론 장악에 대한 국정조사를 즉각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제22대 국회가 시작되면 혹은 다른 정부가 들어서면 언론 탄압과 장악 시도는 멈출까. “날카로운 칼을 내가 갖고 있으면 무기지만 상대가 갖고 있으면 흉기가 되잖아요. 야당 땐 흉기라 말하고 여당일 때는 정당한 공권력을 수행하는 수단이라고 하는 거죠. 이건 안 변해요.” 심영섭 교수의 말이다.|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