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3조달러 걸프 자금 갈라지나…월가에 커지는 ‘사우디·UAE 선택’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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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국부펀드 자금을 동시에 운용해온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양국 가운데 어느 시장에 무게를 둘지 선택해야 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두 나라가 이란전과 석유 정책을 둘러싸고 갈라서면서 3조달러가 넘는 걸프 자본의 운용 구도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블룸버그는 12일(현지시각) 월가 은행가와 사모펀드 경영진 12명 이상을 인터뷰한 결과,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블랙록, 브룩필드, KKR 등이 양국 관계의 추가 악화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글로벌 금융회사가 사우디와 UAE 양쪽에서 받아온 국부펀드 자금은 합쳐 3조달러(약 4500조원)를 넘는다. 주요 금융회사 경영진들은 두 나라가 정면 충돌하는 상황까지는 예상하지 않았지만, 양측이 모두 목소리를 키우면서 앞으로 사우디 수도 리야드와 UAE 수도 아부다비 가운데 어느 쪽 자금에 집중할지를 결정하라는 압박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 기업 활동에서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사우디에서 UAE로 보내는 기업 송금이 이례적으로 늦어졌고, UAE에 거주지를 둔 글로벌 금융기업 직원들이 사우디 사업비자를 받기도 어려워졌다.
두 나라 관련 당국은 특정 국가를 겨냥한 제재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송금과 비자 문제가 양국 관계의 균열 시점과 겹치면서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은 경제 갈등이 심해질 경우에 대비한 내부 위험평가까지 실시하고 있다.
중동 펀드 자금을 모으던 한 국제 운용사는 사우디 측의 요구도 달라졌다고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운용사는 “사우디 출자자들로부터 앞으로 사우디에 집중하는 투자기구에만 출자할 수 있고, UAE 관련 투자는 피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로펌은 어느 한쪽 진영의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걸프 업무 자체를 이전보다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다고 했다. 한 금융회사는 갈등이 크게 악화할 경우 미국 정부를 통해 파장을 줄이는 로비 계획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자금이 세계 투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국부펀드 정보업체 글로벌SWF는 올해 7월 기준 전 세계 국부펀드 운용자산을 약 13조달러로 집계했다. 사우디와 UAE 국부펀드가 운용하는 자금은 이 가운데 5분의 1을 넘는다.
사우디 공공투자기금(PIF) 한 곳의 운용자산만 약 1조2100억달러(약 1815조원)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 걸프 자본이 참여한 거래 규모도 약 3000억달러(약 450조원)로, 1년 전보다 200% 가까이 증가할 정도로 호황을 보였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사우디와 UAE 펀드는 올해 상반기 최대 인수합병 건으로 알려진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의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 1100억달러(약 165조원) 인수에도 나란히 자금을 댔다. 사우디가 지난해 게임회사 일렉트로닉아츠(EA)를 550억달러(약 82조5000억원)에 사들일 당시에는 외국 은행들이 자문 수수료로 수백만달러를 벌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인력과 사업 구조도 양국에 걸쳐 얽혀 있다. UAE는 7개 토후국으로 구성된 연방으로, 정치와 국부펀드는 수도 아부다비에 집중돼 있고 금융과 외국인 생활 기반은 상업 중심지 두바이에 몰려 있다.
월가를 포함한 주요 글로벌 금융회사 직원 상당수는 국제학교와 주거 시설이 갖춰진 두바이에 살면서 주중에는 생활 규범이 보수적인 사우디 리야드로 통근한다. 사우디 정부도 이 같은 출퇴근 형태를 인식하고 수년 전부터 자국에서 돈을 버는 다국적기업에 현지 조직 확대를 요구해왔다.
두 나라는 한때 2015년 예멘 내전에 함께 개입할 정도로 가까운 우방이었다. 그러나 예멘과 수단에서 서로 다른 세력을 지원하면서 관계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지난 4월 UAE가 사우디가 주도해온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탈퇴하면서 갈등이 크게 드러났다.
미국과 이란이 충돌한 올해 전쟁 국면에서도 양국은 다른 길을 택했다. 사우디는 이란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UAE는 초기부터 강경론을 주장했다.
블룸버그는 UAE의 OPEC 탈퇴에 대해 “이 결정이 사우디의 예상을 벗어났다”며 “사우디가 주도한 OPEC 체제 전반을 위협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동 경제의 맹주인 두 나라 사이 긴장이 커질수록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걸프 정책의 셈법도 복잡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들은 이미 운용 펀드와 투자자, 거래, 자금 운용 인력을 사우디와 UAE 중 어느 쪽에 배치할지를 사안별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피라스 막사드 유라시아그룹 중동·북아프리카 총괄은 “이란과 분쟁을 치르는 시기에 중동의 핵심 미국 동맹국들이 더 쪼개지는 것은 미국이 추구하는 장기 전략적 이익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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