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LF ‘사살 주장’ 뒤집은 이란 실세 헤자지…하메네이 장례식서 생존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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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 관저를 폭격하며 사살했다고 주장했던 알리 아스가르 헤자지 최고지도자 비서실장이 넉 달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국무부가 결정적 제보에 1000만달러(148억원)의 포상금을 내건 이란 정권의 막후 실세다.
헤자지 실장은 지난 9일(현지시간) 이란 마슈하드에서 열린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장례식 현장에서 포착됐다. 13일 이란 인터내셔널과 이란와이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그는 이란 정권 고위 관계자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스라엘은 지난 2월28일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 관저를 폭격했을 당시 헤자지 실장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한 달 뒤인 지난 3월 그의 신병 확보로 이어질 결정적 제보에 1000만달러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해 생존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남겼다.
이번에 생존이 확인되면서 헤자지 실장이 부친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최고지도자 선출과 현 정권 유지에 깊숙이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와이어는 헤자지 실장이 권력의 부계승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뜻에 따라 당초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선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실제 선출 과정에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모즈타바 현 정권에서도 권력의 중심에 선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헤자지 실장은 지난 30년간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최측근으로 활동하며 입법·사법·행정 전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와이어는 “헤자지 실장은 이란 최고 요인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이란의 정보기관을 조율하고 최고위급 결정을 실질 정책으로 전환하는 임무를 맡았다”며 “막대한 영향력에도 일반 대중에게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경호원 없이 거리를 활보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가 권력 핵심부로 진입한 배경에는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측근이었던 삼촌과의 인연이 있었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당시 이슬람공화당에 입당한 헤자지 실장은 팔레비 왕조가 이란에 도입한 세속적 요소를 제거하는 정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루홀라 호메이니 초대 최고지도자의 지시로 설립된 준사법기관 혁명검찰청의 정치 부총장을 거쳐 이란 정보부(MOI) 설립을 주도했다.
1989년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최고지도자 집무실인 베이트로 발령받았다. 그는 이곳에서 모하마드 모하마디 골파예가니와 함께 최고지도자의 지시를 입법·사법·행정부에 전달하는 이란 최고위층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맡았다.
이란와이어는 “헤자지는 이란 공포정치를 구축한 인물”이라며 그가 1994년 아르헨티나 유대인 공동체 테러 사건과 관련한 지시를 내린 혐의와 2009년 이란 민주화 운동인 녹색운동의 유혈진압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5년 이란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핵협정(JCPOA)을 체결하는 과정에서도 헤자지 실장은 의사결정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체는 헤자지 실장이 알리 라리자니 당시 이란 국회의장, 알리 샴카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과 심야 회담을 한 사실을 언급하며 “헤자지 실장의 참석은 베이트의 명시적 지시로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이어 “이 ‘그림자 속 인물’의 개입으로 JCPOA 합의안은 예상과 달리 수정안 심의조차 거치지 않고 20분 만에 의회를 통과했다”고 전했다.
이란와이어는 “미 국무부가 헤자지 실장 관련 제보에 1000만달러 포상금을 걸었다는 것은 그를 매우 위험한 인물로 간주한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2월28일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와 함께 지도부 대부분이 사망하면서 헤자지 실장은 이슬람 성직자 사회와 이란 혁명수비대, 국가 조직 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로 남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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